'맞팔 하실래요?' 요 9:24-41

2026. 3. 3. 09:42·לשכה/묵상 이야기

 

오늘은 아이들이 모두 개학을 했다. 새학년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아침부터 기대반두렴반에 부산을 떤다. 
나도 그랬지만, 아이들도 새학년의 첫시간은 아무래도 관계로 인한 염려가 있는 듯 하다. 이런 '낯섬'이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또 아울러 좋은 관계들을 붙여주시길 기도하는 아침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정치학>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리한바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틀리지 않더라.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시공을 넘나드는 관계 속에서, 그로인한 울고 웃음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우리 모두는 Follow를 누르는 순간부터, Mutual follow가 되는 때까지 우리는 기대와 희열, 더러는 슬픔들을 느낀다.

 

오늘 요한복음 9장의 후반부는 눈을 뜬 맹인의 사건 이후를 기록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계속해서 '안다', '모른다'는 말로 자신들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유심히 살펴본다면, 이것이 곧 '관계의 어떠함'을 표현하는 바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SNS의 관계처럼 '모름'을 'UnFollow'로 '앎'을 'Follow'라고 대치해본다면,

  1. 고침을 받은 눈 멀었던 자는 육체적인 빛을 얻었지만, 아직 예수님을 '그'라 부르는 모름의 상태 'Unfollow'에 머물고 있다.  
  2. 또한 교리적으로는 메시야를 알았지만, 부정하고 있던 바리새인도 'Unfollow'(또는 follow했다는 착각)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언제 예수님과의 Mutual Follow관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찾아오신 예수님 앞에서, 맹인이었던 그는, '내가 그다!'(v37)라고 자신을 계시 하시는 그 때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요9:38)

 

이것이 'Mutual Follow', '맞팔'의 순간 아니겠는가? 

 

요즘 교회들이 시끄럽다.
목사인데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사람...
목사인데, 입에 담을수 없는 거친언어들로 파문을 당하는 사람.

 

어쩌면,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이지 않을까 ...
주여주여 하지만,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일방적인 follow가 우리들의 초상은 아닌지.

 

Mutual Follow가 되어야 한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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